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츠부라야 프로덕션 (문단 편집) === 도호 산하 시대 ===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특촬의 신'이라고 불린 [[츠부라야 에이지]]가 1963년에 설립한 제작사이다. 전신은 1948년 [[도호]]를 해직한 츠부라야 에이지가 자택에 마련한 사설 연구소였다. 그 후 츠부라야 에이지가 도호에 복직했을 때, '츠부라야 연구소'는, 도호 촬영소내로 이설되어 1954년까지 도호 작품의 모든 타이틀 부분 촬영, 예고편등의 [[하청]] 작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1956년에는 츠부라야 에이지의 자택의 설치되어 촬영 스케줄 속에서 해낼 수 없는 카메라 촬영이나 수고가 많은 합성 작업을 해냄과 동시에 타사의 특촬 업무를 하청받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1963년 4월 12일, 츠부라야 에이지는 '츠부라야 연구소'를 '주식회사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이라는 명칭으로 바꿔서 정식 특촬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현재의 '주식회사 츠부라야 프로덕션'으로 사명을 변경한 것은, 1968년 12월의 일이다.]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의 설립시에 [[도호]]와 계약했던 츠부라야는, 정식적인 회사의 존재를 도호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후 츠부라야 에이지가 독자적인 프로덕션을 설립했다는 것을 알게 된 도호는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에 의상 창고를 제공해 1964년 3월 30일에 정식으로 자본과 임원을 투입했다. 창업 초기에는 도호가 최대주주였으며, 도호 수주 TV 영화를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제작했다. 1966년 츠부라야는 일본 최초의 특촬 TV 시리즈 중 하나인 [[울트라 Q]]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2.4%라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후속작인 [[울트라맨]]이 평균 시청률 36.8%를 기록하는 사회현상을 일으켰고, 1968년 방영한 [[울트라 세븐]] 역시 평균 시청률 26.5%를 기록하며 히트에 성공했다. 세 작품을 연달아 성공시킨 츠부라야는 [[쇼와 시대]]의 특촬물을 이끄는 인기 특촬 제작사가 됐다. 하지만 이어서 방영한 '[[괴기 대작전]]' 방영 종료 당시에는 방송국으로부터의 일감이 끊겨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1968년 최대주주인 도호가 60%의 지분을 취득해 츠부라야를 자회사화했다. 사장은 [[츠부라야 에이지]]가 취임했고, 도호에서는 7명의 임원이 파견됐다. 츠부라야 에이지의 아들인 츠부야 노보루가 전무, [[츠부라야 하지메]]가 이사에 취임했다. [[구조조정]]에 의한 경영재건책으로 [[울트라 시리즈]]의 전설적인 각본가인 [[킨조 테츠오]] 등이 소속된 기획문예부를 폐지했고, 약 150명이 있던 사원을 40명까지 압축했다. 빚 변제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이 마련되어 드라마를 제작 할 수 있었으며, 도호의 비호 아래 간신히 경영을 계속했다. 츠부라야 에이지가 살아있던 시절, 츠부라야는 특촬 제작에 '''일체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았다.''' 울트라 시리즈 제작비에 관한 에피소드는 '울트라맨이 울고 있다'라는 저서[* 츠부라야 프로덕션 6대 사장 츠부라야 마루아키가 펴낸 저서]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50만엔이라는 제작비를 방송사로부터 받으면서 그 배에 달하는 경비를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초대 울트라맨도 40%에 가까운 전설적인 시청률을 냈음에도 촬영 비용 때문에 회사의 돈이 바닥나서 3쿨로 조기종영했다. 원래 츠부라야 에이지는, 영화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비즈니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영상화한 예술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스타일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제작비를 쏟아부은 쇼와 시대 츠부라야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얻을 정도로 걸작들이 됐다. >초기 울트라 시리즈에서는 전국 방송국의 30분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비가 500만엔 정도, 한 시간 드라마에서도 550만엔을 넘지 않던 시절에 TBS는 200만엔을 츠부라야 프로덕션에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경비는 편당 1000만엔 가까이 들어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빚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https://note.com/bunko_x/n/nd3453469a423|#]] 1970년 창업자 츠부라야 에이지가 사망한 지 불과 3년 후인, 1973년에 41세의 젊은 나이로 취임한 2대 사장 [[츠부라야 하지메]]가 사망했다. 후계자를 결정할 새도 없는 급서였으며, 그래서 차남인 츠부라야 노보루가 사장에 취임했다. 이 인물은 울트라맨 팬덤에서 평가가 나쁜 인물이다. 츠부라야 노보루는 독재 경영으로 유명했는데 직원들의 반감을 사는 동시에 도호, TBS 등 출자기업,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자금의 사적 유용 등 스캔들도 발각되어 해외 사업에도 실패했다. 특히 적은 액수의 자금사정 때문에 [[태국]] 제작사에 캐릭터 사용권을 양도하게 되어 일본 이외에서의 관련 상품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것은 큰 타격이었다. [[https://www.kk2.ne.jp/kk2/biz03/00000122.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